중국 특유의 중세 시대 유닛입니다. 사정거리가 1이고 매우 강한 전투력을 가진 원거리 유닛입니다.
역사적 배경
9세기경에 화약을 개발한 중국인들은 불꽃놀이와 아름답고 화려한 폭발물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만 화약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화약이 전쟁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얼마 안 가 화승총과 대포가 아시아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용샹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폭격기와 대포 사이의 특정 시점에 '와호'라는 무기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는 화약이 전쟁에서 사용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조잡한 장치는 기본적으로 한쪽 끝을 틀어막고 두꺼운 밧줄로 내구성을 보완한 후 포신이 약간 위로 향할 수 있도록 2개의 짧은 다리를 장착한 쇠통이었습니다. 만약 이 짧은 다리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포탄이 적을 제압하는 대신 땅에 처박혔을지도 모릅니다. 와호는 명나라 초기 1368년경에 사용되었고 1592년까지 한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와호는 발포 시 800보의 사거리를 가졌고, 당시 이보다 사거리가 먼 무기가 없었던 만큼 적에게 까다로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중국 특유의 중세 시대 유닛입니다. 사정거리가 1이고 매우 강한 전투력을 가진 원거리 유닛입니다.
역사적 배경
9세기경에 화약을 개발한 중국인들은 불꽃놀이와 아름답고 화려한 폭발물을 만들기 위한 용도로만 화약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화약이 전쟁에서도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얼마 안 가 화승총과 대포가 아시아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용샹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잘 알려진 바는 없지만, 폭격기와 대포 사이의 특정 시점에 '와호'라는 무기가 존재했다고 합니다. 이는 화약이 전쟁에서 사용된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 조잡한 장치는 기본적으로 한쪽 끝을 틀어막고 두꺼운 밧줄로 내구성을 보완한 후 포신이 약간 위로 향할 수 있도록 2개의 짧은 다리를 장착한 쇠통이었습니다. 만약 이 짧은 다리를 장착하지 않았다면 포탄이 적을 제압하는 대신 땅에 처박혔을지도 모릅니다. 와호는 명나라 초기 1368년경에 사용되었고 1592년까지 한국에 주둔 중인 일본군에게 사용되었습니다. 와호는 발포 시 800보의 사거리를 가졌고, 당시 이보다 사거리가 먼 무기가 없었던 만큼 적에게 까다로운 존재로 여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