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세르반테스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한 죽음을 맞이했으며 묘비도 없는 마드리드의 한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60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문명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손 꼽히는 돈키호테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그는 소설이 큰 인기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혜택을 얻지 못했습니다. 16세기에는 '인세'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기 1547년 마드리드 근처에서 태어난 미겔은 의사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의사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했고, 청각 장애를 가진 아버지가 더 나은 자리를 찾아 거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에 미겔은 성장하면서 가족과 함께 여러 차례의 이사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가 정식 교육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1569년에 첫 작품을 선보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쓴 격식체의 시는 필립 2세의 왕비를 추모하기 위한 모음집에 수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펜보다는 검이 강했고 세르반테스는 시 쓰는 일을 그만두고 군대에 지원했습니다. 그는 라 마르케사 호를 타고 전설적인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여 가슴에 2개의 상처를 입었으며 한쪽 손은 불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군인으로 근무했는데, 유혈 사태에 지친 그는 1575년에 고국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중간에 터키군에게 포획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5년 동안 노예로 일하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되었습니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세르반테스는 1585년에 생계 유지를 위해 첫 작품을 발표했지만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스페인 무적함대의 병참 직원으로 들어가 돈을 벌어보려고 했지만 관리 상의 실수로 두 차례에 걸쳐 교도소에 투옥되었고, 결국 세르반테스는 다시 글쓰기로 관심을 돌렸고 1605년에는 돈키호테 1부가 출간되었습니다. 1615년에는 2부가 마저 인쇄되었지만 작가는 여전히 부와 명예에 굶주린 채로 다음 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