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의식의 흐름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인 문학 양식을 만들고 새로운 언어적 시도와 스토리텔링 기법, 일상생활에 대한 고찰로 유명해졌습니다. 그가 쓴 소설의 선정성은 그를 스타로 만들었고 외설의 법적인 해석에 영향을 주는 기념비적 작품이었습니다.
제임스 오거스틴 앨로이시우스 조이스는 서기 1882년 2월 더블린에서 10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존은 아일랜드에서 가장 뛰어난 테너라고 평가될 정도로 재능 있는 성악가였지만 음주 문제로 가정이 평온하지 못했습니다. 제임스는 1902년 더블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파리로 가 표면상으로는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일랜드로 돌아왔는데, 노라 바나클이라는 객실 청소부 사이에서 두 명의 자식을 낳는 일탈적인 행동을 했으며 아버지와 같이 폭음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이스는 아일랜드에 머무는 동안 아이리시 홈스테드(Irish Homestead)라는 잡지에 자신의 첫 문학 작품을 팔았으나 그것만으로는 아일랜드에서 생활하기에 모자랐습니다. 다음 몇 년 동안 조이스와 노라는 풀라, 트리에스테, 로마, 파리 등을 전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취리히에 머물렀습니다. 그는 1914년에 자신의 첫 작품이자 단편 모음집인 '더블린 사람들'로 등단했고 이 년 뒤에는 자신의 첫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이후로 자신의 기념비적 소설인 '율리시스'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더블린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1922년에 이 소설이 발표되자 미국과 영국은 자체 검열을 통해 그의 작품을 금서로 지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렸습니다.
재정적으로 안정되자 노라는 가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파리로 돌아온 조이스는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를 집필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할 무렵 취리히로 돌아가 194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