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향하는 모든 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은 도심 외곽 지역에 거주해야 했으며, 그 결과 '인술라이' 즉, 집단 주택이 형성되었습니다. 석재, 그리고 로마인들이 발명한 콘크리트로 만든 이 아파트식 건물은 중하위 계층의 서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인술라이는 높이가 5~6층 이상에 달했고 1층에는 상점이, 위층에는 주거용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지상과 가까울수록 주거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인술라이는 무너지기 쉬웠고 당시는 화재의 위험이 만연한 시기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와 네로는 건축 표준을 수립했지만 4세기 무렵에는 도시 내 인술라이의 수가 약 42,000~46,000개에 달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로마로 향하는 모든 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은 도심 외곽 지역에 거주해야 했으며, 그 결과 '인술라이' 즉, 집단 주택이 형성되었습니다. 석재, 그리고 로마인들이 발명한 콘크리트로 만든 이 아파트식 건물은 중하위 계층의 서민들을 위한 주거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인술라이는 높이가 5~6층 이상에 달했고 1층에는 상점이, 위층에는 주거용 아파트가 있었습니다. 지상과 가까울수록 주거공간으로서의 가치가 높았습니다. 하지만 인술라이는 무너지기 쉬웠고 당시는 화재의 위험이 만연한 시기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와 네로는 건축 표준을 수립했지만 4세기 무렵에는 도시 내 인술라이의 수가 약 42,000~46,000개에 달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