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라위는 이슬람 알안달루스의 코르도바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엘-자라에서 서기 936년경에 태어났습니다.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 하에서 학문적 황금기와 안정을 누리고 있던 알안달루스에서는 무슬림,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이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두려움 없이도 과학적 발달을 실현할 수 있었으며 번역과 관용은 예외적이라기보다는 관례가 되었습니다. 문명 최고의 의사가 꽃을 피울 수 있었던 이상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유년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는 내과의로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빠르게 명성을 얻은 그는 칼리프 알-하킴 3세의 왕실 주치의로 임명되어 50년 동안 자리를 지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고로 알자라위는 1013년에 사망했습니다. 지금의 의사들과는 달리 그는 부와 상관없이 찾아온 모든 이들을 환자로 간주했으며 칼리프는 이를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알자라위는 다양한 질병과 상처를 볼 수 있었고 치료 방식을 실험한 후 관찰한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기에 이러한 기록을 30권 분량의 약학 백과사전(Al-Tasrif li man ajaz an-il-talif))으로 편찬했고, 이 책의 이름은 '두꺼운 책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한 지침서'를 의미합니다.
이 백과사전, 알-타스리프의 인쇄본은 무어인의 스페인에서 회교도 및 기독교 지역 너머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치료 행위가 마녀술로 간주되고 전쟁을 제외하고는 몸에 칼을 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오지까지 책이 들어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향후 100년 동안 알-타스리프는 라틴어와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1100년대 이후로는 알-타스리프가 문명화된 세계 전역에서 표준으로 사용되는 의학 서적이 되었으며 1770년대까지도 계속해서 재인쇄를 거쳐 사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