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구도에 있던 덴마크 바이킹은 잉글랜드와 프랑스 지역에서의 약탈 행위로 악명 높았던 반면 노르웨이 바이킹은 북대서양 주변에서 활동했고 스웨덴 바이킹은 발트 해를 횡단하여 러시아 국경의 내륙 지역까지 도달했습니다. 이러한 바이킹들은 '바이킹 시대' 전반에 걸쳐 내륙 깊은 곳에서 유명한 비잔티움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역로를 구축한 이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서기 9세기 동안 러시아,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거쳐 볼가까지 도달한 수많은 스웨덴 바이킹들은 이러한 동부 지역에 정착하며 러시아인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850년경에 키예프를 점령한 러시아인들은 몽골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400년에 가깝게 지속된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추후 천년 동안 스웨덴 자체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지방이 모여 형성된 어설픈 협력체였습니다. 비록 초기의 국왕들이 여러 노르웨이 연대기에 언급되기는 했지만 전설과 실제 사건을 구분하다 보면 이들의 유산과 성공담이 다소 퇴색될 수도 있습니다. 전승자 에릭의 아들인 울로프 쉐트코눙은 995년부터 1022년까지 스웨덴을 다스렸으며 스웨덴 부족을 하나로 통합하고 스베알란드와 예탈란드를 모두 다스린 진정한 통치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덴마크와 스웨덴, 파벌 간의 질투와 내분은 게르만 공국과 한자동맹을 끌어들이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스웨덴은 수십 년에 걸쳐 자치권 향상을 위한 시도를 이어갔으며, 덴마크의 국왕, 크리스티안 2세가 1521년에 스톡홀름에서 여러 저명인사를 처형하면서 상황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이는 스웨덴의 귀족, 구스타브 바사가 이끈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구스타브 바사는 귀족들에 의해 스웨덴의 구스타브 1세 바사로 왕위에 올라 그를 끌어내리려는 덴마크의 시도를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또한 구스타브 1세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자신의 통치하에 두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근대 국가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구스타브 1세의 명령에 따라 초기 개신교로 일찍 개종했습니다. 이는 헨리 8세가 영국을 개종(영국 역시 국왕과 교황 간의 오랜 분쟁이 개종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정황상 일맥상통함)시킨 시점과 시기가 거의 같습니다. 스웨덴은 이어진 수 세기 동안에도 로터교의 수호자 역할을 이어가게 됩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퍼스 바사는 스웨덴의 가장 유명한 국왕 중 한 명이었으며, 30년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개신교 편에서 훌륭한 전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덕분에 스웨덴은 다음 세기에 북유럽의 1등 국가로 비상할 수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1632년의 뤼첸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왕위는 그의 유일한 핏줄인 크리스티나(그녀의 삶에 관해서는 관련 섹션 참조)에게 계승되었습니다.
하지만 1700년대 초의 대북방 전쟁 이후로 발트 지역에 대한 스웨덴의 지배권은 약화되었고 러시아, 그리고 덴마크-노르웨이를 비롯한 동맹들에 대한 명성도 잃게 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접어들면서 스웨덴은 현재의 핀란드에서 러시아로 이어지는 영토를 잃었고, 나폴레옹이 유럽의 질서를 새로 잡기 위해 파견한 프랑스 원수, 장바티스트 베르나도트를 통해 어쩔 수 없이 노르웨이와 또 다른 연합(1810년)을 맺어야 했습니다. 젊은 시절 파리 자코뱅 소속의 선동가로 활동했던 새로운 국왕과 관련하여 팔에 '만왕에게 죽음을'이라는 문신이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결국 노르웨이와의 연합은 20세기 초에 와해되었고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20세기 초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급격한 산업화였습니다. 1901년에는 최초의 노벨상이 수여되었습니다. 노벨상은 화학자 겸 기업가였던 알프레드 노벨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를 더욱 효율적인 방식으로 죽일 수 있도록 만든 발명가가 아닌 다른 부류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습니다.
스웨덴은 나폴레옹 시대 중반 이후로 유럽 전쟁사에서 확고한 중립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이 정책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며, 지금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스웨덴은 국제 질서를 위한 열성적인 지지자가 되었으며, 이것이 세계 전쟁과 정치적 재앙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스웨덴의 오랜 역사는 정치체계와 통치가 반복되고 개혁되는 과정이었으며, 덕분에 모든 시민들이 지닌 높은 수준의 평등권을 바탕으로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평등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200년 동안 군사적 모험주의를 포기한 스웨덴은 남는 자원을 활용하여 국가를 발전시켰으며,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많은 부문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유엔을 통해 국제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제학자 겸 정치학자인 다그 함마르셸드는 제2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20세기의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스웨덴은 계속해서 평등주의 원칙을 지지하고 있으며 이를 만국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웨덴은 지속적인 평화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당사자 간의 적극적인 중재자라는 평판을 높이 쌓고 있습니다.